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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유연근무제 도입, 해외와 국내 사례 비교 분석

by 매일스쿱 2025. 4. 4.

공무원 유연근무제 관련 사진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 60년 넘게 굳건히 자리 잡았던 점심시간 1시간의 관행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유연근무제의 일환으로 공무원 점심시간을 30분으로 단축하는 시범사업을 도입, 근무 문화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과연 이 정책이 공직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전시 행정에 그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1. 유연근무, 왜 '점심시간'부터 건드리는가?

인사혁신처는 지난 2월부터 자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점심시간 유연근무제' 시범사업을 운영 중입니다. 기존 전자인사관리시스템(e사람)에 고정되었던 점심시간(12:00~13:00)을 30분으로 단축,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방식입니다. 6개월간의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전 부처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워라밸 중시 문화 확산과 함께, 공직 사회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유연근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짐에 따라, 공직 사회도 시대 변화에 발맞춰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 공직 내부의 엇갈린 시선

 

시범사업에 대한 공직 사회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기획재정부의 한 서기관은 "약속이 없거나 업무가 많을 경우, 식사를 빨리 마치고 퇴근할 수 있어 합리적인 아이디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워킹맘·대디 등 개인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근무 관리 감독의 어려움, 직원 간 소통 약화, 구내식당 이용 증가에 따른 주변 상권 위축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나 해양수산부 등 일부 부처에서는 점심시간이 회의의 연장선이 되는 경우가 많아, 1시간도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2. 해외 다양한 사례 비교 분석

전 세계적으로 근무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워라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함께 주 4일제 등 새로운 업무 모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 일본의 경우

 

일본은 2015년부터 국가공무원 사회에 유연근로제를 도입, 2024년 4월부터는 주 3일 휴무제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코어타임 외 나머지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행정 당국도 일본 사례를 참고, 2024년 7월 '공무원 근무혁신지침'을 통해 공동근무시간 설정 등 초과 근무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 네덜란드의 경우

 

네덜란드는 유연근무제의 선두주자로,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트타임 근무가 일반화되어 있으며, 근로자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전체 사업체 중 59%가 원격 근무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영국의 경우

 

영국은 '0시간 근로계약(zero-hours contracts)'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용주가 필요할 때만 근로자를 호출하여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근로자는 일한 만큼만 시급을 받게 됩니다. 2012년 기준 영국 기업의 유연근무제 시행률은 88%에 달했습니다.

 

✅ 독일의 경우

 

독일은 '근로시간계좌제'를 통해 근로자들이 자신의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근로자들은 초과 근무 시간을 적립하여 휴가나 휴식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죠. 2024년 2월부터 50개 기업이 주 4일제를 6개월간 시행하는 대규모 실증 실험에 들어갔으며 급여도 기존 주 5일제와 마찬가지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3. 국내 실패 사례 분석

사실 탄력 근무의 대표적인 유형인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주 15~35시간 근로)는 이미 2013년 국내에 도입되었지만, 2018년부터 지방직 채용이 중단되고 2020년 국가직 채용까지 폐지되면서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정해진 근무 시간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라고 지적합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의 실패는 현장과의 괴리, 경직된 조직 문화, 부족한 지원 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번 점심시간 단축 정책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편익을 체감할 수 있도록 세부 지침을 체계적으로 마련하고, 개인의 상황과 조직의 목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결론: 유연근무, 성공적인 혁신을 위한 조건

 

개인적으로 이번 점심시간 탄력 운영 시도가 전 부처로 확대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근무 시간 = 성과'라는 낡은 인식, 감독 사각지대를 악용한 사례 발생 가능성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하지만 공직자가 스스로 일과 생활을 조절할 수 있는 자율성이 확대된다면 창의성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제도가 단번에 정착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꾸준한 개선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60여 년간 유지되었던 점심 휴게 관행의 변화는 작은 균열이지만, 이를 발판 삼아 전반적인 유연근무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습니다. 주 4일제, 주 3일 휴무제 등 보다 폭넓은 변화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개선해 나간다면, 공직 사회는 더욱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일터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